좋은시
[스크랩] 추신 / 이병률
문근영
2017. 12. 5. 07:41
추신
이병률
나 어느 먼 곳 어딘가에 쓰레기 줍는 사람 되어 당신 버린 쓰레기 주울 수 있다면
문신을 그리겠다는 당신의 살갗을 바늘로 쓰다듬을 수만 있다면
당신의 닳은 뼈와 기억이 되어 폭설 속 잠들 수 없는 밤 불꽃 하나가 날아오는 방식으로 당신 역사와 내통할 수 있다면
어느 신성한 냄새가 되어 당신 온몸을 방부할 수 있다면
이불이 되어 줄 위에 나란히 걸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의 광채를 다 가질 수만 있다면
어느 생에서 한 번 당신에게 부딪혔던 작은 새의 파닥거리는 심장이 되어 당신 손아귀에서 안식할 수 있다면
그래서, 그리하여, 그럼에도 따위의 말들이 모두 당신에게 귀결될 수 있다면
나 떠나기도 돌아오기도 하리
—《시와 반시》2016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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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 1967년 충북 제천 출생. 1995년〈한국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바람의 사생활』『찬란』『눈사람 여관』, 산문집 『끌림』 등.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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