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게 한 마리의 힘 / 정유화

문근영 2017. 12. 4. 23:25

게 한 마리의 힘

 

   정유화

 

 

 

나는 바다가 좋아서

바다 앞에 쪼그려 앉아본다.

바다가 슬그머니 일어선다.

바다는 자기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파도를 밀었다 당겼다 한다.

 

나에게 말을 건네 보고 싶은지

작은 게 한 마리

물 밖으로 내밀어 놓는다.

바다 사신으로 온,

그 게 눈을 보니 거기에

바다가 몽땅 들어 있네.

 

게를 집어 올리니

바다가 딸려오네.

숭어도 딸려오고, 갈치 떼와 개불도 딸려온다.

혹등고래, 철갑상어도 딸려오고 있다.

 

무릎도 저리고

너무 무겁기도 해서

게를 놓으며 일어서니

바다가 가볍게 앉으며

게를 손으로 받아 품 안에 넣는다.

 

게가 바다로 돌아가자

이제 게가 나의 손을 끌어당기기 시작하네.

방어도 문어도 조개도 멸치 떼도

밍크고래도 참치와 새우 떼도 나의 손을 끌어당긴다.

파도를 밀었다 당겼다 하던

바다도 이제 나를 밀었다 당겼다 한다.

 

게 한 마리의 힘이

얼마나 센지

게가 나의 생을

몽땅 다스리고 있다.

 

 

                          —《시와 사람》2016년 봄/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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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화 / 1962년 경북 선산 출생. 중앙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박사 졸업. 1988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 『떠도는 영혼의 집』『청산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미소를 가꾸다』.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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