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사랑의 유령 / 이진희
문근영
2017. 12. 4. 23:09
사랑의 유령
이진희
그것은 흰옷을 걸치고 활짝 웃으며
거짓말을 퍼트린다 밤마다 알코올 냄새를 풍긴다
검은 장화를 신고 비틀거린다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할 때나
정오에도 치렁치렁한 머리채를 풀고 나타나
냄새나는 가랑이를 벌리지만
지나간 나날들의 실체를 알 길 없다
사랑을 갈구했다면 사랑을 했어야 했겠지
눈물을 흘리고 땀을 흘리고
우스운 거짓말들을 곳곳에 흘리고 흘려
손아귀에서 스르륵 빠져나갈 운명
한사코 붙들고 싶었던 것
생애의 어떠한 주기가 끝났습니다만
변치 않아요, 당신이 어리석다는 사실
새로운 답이 아닌
진부한 질문을 찾아야 한다
행복한 산책을 즐기러 나온 듯
몹쓸 그것은 오늘도
검은 베일을 내려 붉어진 눈가를 가리고
토사물 냄새 진동하는 환락가를 배회하는데
—《시인수첩》2016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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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희 / 1972년 제주 중문 출생. 서울과 안양, 그리고 수원에서 성장.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2006년 계간 《문학수첩》으로 등단. 시집『실비아 수수께끼』.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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