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세계복합유산(664)/ 미국/ 파파하노모쿠아키아
세계복합유산(664)/ 미국
파파하노모쿠아키아(Papahānaumokuākea; 2010)
Hawaiian squirrelfish at French Frigate Shoals, Papahānaumokuākea
Laysan and Short-tailed Albatrosses at Northwest Hawaiian Islands National Monument
파파하노모쿠아키아는 주변 바다와 함께 작고 낮게 자리 잡은 섬들과 환초들이 일직선을 이루는 거대한 군락이다. 하와이 군도[Hawaiian Archipelago]에서 북서쪽으로 약 250㎞ 떨어져 있으며, 총 길이는 1,931㎞가 넘는다. 하와이 원주민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터전으로 사람과 자연 세계의 관계에 대한 하와이 인들의 전형적인 사고를 보여 준다. 생명이 비롯되고 죽어서 영혼이 돌아오는 곳으로 여겨진 장소였던 까닭에 토착 하와이 인의 문화에서 우주 철학적으로나 전통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유산 지역 가운데 니호아(Nihoa) 섬과 마쿠마나마나(Makumanamana) 섬에 유럽 인 정착 이전 시대의 고고학 유적이 있고, 기념물은 원양 및 심해 서식지와 관련이 있으며, 해산과 해저 뱅크, 거대한 산호초와 석호 등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해양 보호 구역 중 하나이다.
약 3000년 전에 시작된 동남아시아로부터 태평양 지역으로의 대이동이 시작되어, 폴리네시아 인들이 300년경에 외딴 하와이 군도에 도착한 후 2,000년 동안 태평양 여러 지역으로 퍼졌다. 폴리네시아 인들은 현재 하와이 인 큰 섬이 토양이 비옥하고 물이 풍부하며, 암초의 해양 생물이 풍부하다는 것을 알았다. 정착민들은 군도의 남동쪽 내륙에 주로 거주하였으나, 파파하노모쿠아키아 내의 두 지역, 즉 모쿠마나마나 섬과 니호아 섬에도 인간 생활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두 섬의 유적은 고고학 연구에 제한된 주제였으며, 아직도 연구해야 할 부분이 많다. 1923~1924년에 태너저 탐험대[Tanager Expedition; 미 해군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북서 하와이 섬의 생물학 조사]가 착수한 최초의 연구에서 수많은 작은 동굴들과 암굴을 발굴하였고, 야외 유적을 부분적으로 발굴하였다. 니호아 섬의 절벽에 있는 작은 바위 틈새에서 발견된 인간의 해골 유물과 모쿠마나마나 섬의 암굴 발굴에서 드러난 인간 대퇴골과 정강이뼈도 수거하였다. 발굴 터와 지표 유적에서 수거한 문화 유물뿐만 아니라 인간의 뼈는 모두 호놀룰루에 있는 비숍 박물관[Bishop Museum]에 보내졌다. 인간의 해골 유물은 최근에 하와이 원주민 문화 실천가들에 의해 섬으로 다시 송환되었다. 석굴 유적에서 관찰한 퇴적물을 모두 분해한 것 외에도, 태너저 탐험대의 발굴 작업으로 인해 섬에 있던 돌담이 불안정해졌다. 섬에 들어온 이전의 몇 개의 비과학적 탐험대가 작고 독특한 조각 석상들과 모쿠마나마나 섬의 지표에 있던 인공물들을 많이 가져갔다. 몇몇 그림들은 비숍 박물관에 있으나 그 외는 모두 사라진 것 같다. 1909년에 이 섬들을 하와이 섬 보호구역의 일부로 선포되었기 때문에 태너저 탐험대 이후로는 이 두 섬에 사람들이 찾아온 기록이 아주 적었다. 단기간의 생물 조사와 단속적이고 영향이 적은 고고학 연구, 하와이 원주민 문화 실천가들의 방문만 접근을 허용하였다. 하와이 원주민 박사 과정에 있는 고고학자와 유산을 책임지고 있는 미국 어류 및 야생 동식물 보호국의 고고학자, 두 사람이 국제 기념물 유적 협의회[ICOMOS]의 임무 수행을 하는 동안 모쿠마나마나 섬에 남아서 그곳에서 박사 과정 프로젝트를 계속하였다. 이 연구는 니호아 섬과 모쿠마나마나에 관한 지식의 격차를 메우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파파하노모쿠아키아에서의 다른 곳에서는 고고학 연구가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80년간 전체 면적의 고고학 작업일 수가 고작 18일이다], ICOMOS 실사 동안 유럽 인이 오기 이전에 사용한 흔적은 전문가에 의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게다가 레이산 환초[Laysan Atoll]에 대해 고고학자들이 수행한 원시 시대의 환경에 대한 탐사에서 인간 활동에 대한 자취를 찾는데 실패하였다. 이것은 오세아니아 주의 외딴 곳에서 사람이 살았던 것보다 두 배 이상이 되는 시기이며 하와이 제도에서 사람이 살았다고 알려진 시기보다 네 배나 더 오래된 7,000년 이상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퇴적물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폴리네시아쥐[Polynesian rat; Rattus exulans]는 최근까지도 쿠레(Kure) 환초에 존재했으나, 땅바닥에 둥지를 트는 조류의 알이 쥐들에게 잡아먹혔기 때문에 이를 보호하기 위해 박멸시켰다. 이들 쥐는 수천 년 전에 최초로 이주한 인간에 의해 외딴 태평양 지역에 유입되고 오늘날 유럽의 쥐와 함께 선박에 의해 운반되면서 공생하고 있는 종이다[그러나 취항하는 모든 선박에 대해 쥐를 엄격하게 통제하는 국립 해양 기념물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폴리네시아쥐[Polynesian rat]가 쿠레 환초에 전해진 것이 유럽 인이 내도한 시기인지 그 이전의 시기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 종은 북서부 하와이 제도의 나머지 부분에는 없으며, 유럽 인과의 접촉이 이루어진 시기의 파파하나우모쿠아케아에는 그 어디에도 서식했음이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공생하는 쥐가 없다고 해서 초기 폴리네시아 인이 북서부의 외딴 섬들에 찾아오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 인 이전에 사람이 살았음이 의심되지 않는 니호아 섬 또는 모쿠마나마나 섬에도 그들이 언젠가 있었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유럽 인들이 18세기 말에 하와이에 들어왔을 때, 독특하고 복잡한 사회 구조와 종교적 체계를 갖춘 사회가 번성해 있었다. 1898년에 하와이는 '신영토 결의안[Newlands Resolution]'이라는 미국인을 중심으로 한 미국과 합병 운동을 통해 미국에 합병되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부터 시작된 저항 운동은 서구 문화와의 동화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이리하여 하와이 문화의 중흥과 신성한 장소들과의 유대가 강화되기 시작했다. 약 100년간의 구전 역사에 관한 많은 양의 정보가 <Kaunamano 1862 in Hoku o ka Pakipika>, <Manu 1899 in Ka Loea Kalai‘aina>, <Wise 1924 in Nūpepa Kuoko‘a> 등의 지역 신문으로 출간되었다. 더 최근의 민족학 연구(2003)는 북서부 하와이 제도의 하와이 원주민 전통 관습과 역사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이 중 일부만이 기록되었을 뿐이고, 조상들[쿠푸나(kupuna)]의 기억과 생활 역사에 더 많은 것들이 깃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