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세계문화유산(658)/ 미국/ 카호키아 마운드 역사 유적
세계문화유산(658)/ 미국
카호키아 마운드 역사 유적(Cahokia Mounds State Historic Site; 1982)
Monks Mound, the largest earthen structure at Cahokia
Cahokia's baseline transects Woodhenge, Monk's Mound, and several other large mounds on the city's east-west axis
The reconstructed Woodhenge, erected in 1985
St. Louis as seen from Monks Mound
Mound 72
The Museum and Interpretive Center
Representation 13th Century Cahokia
An 1887 illustration of Monks Mound showing it with fanciful proportions
Mississippian culture repoussé copper plates
미주리 주[State of Missouri] 세인트루이스(St. Louis) 북동쪽 약 13㎞ 거리에 있는 카호키아 마운드 역사 유적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이전 멕시코 북쪽에 있었던 정착지들 중 가장 크다. 이곳에 사람이 살았던 시기는 주로 미시시피 시대(800~1400)로, 당시 그 넓이는 약 1,600㏊였으며, 120개의 마운드(mound)가 남아 있다. 다수의 위성 마운드와 크고 작은 소규모 부락 마을들은 복잡한 족장 사회[chiefdom society]의 흔적을 뚜렷이 보여 준다. 농업 사회였던 이곳에 인구가 가장 많았던 시기는 1050~1150년의 약 100년 동안으로, 당시 인구는 10,000~20,000명에 이르렀다. 이 유산들 가운데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선사 시대의 마운드인 몽크스 마운드(Monks Mound)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며, 그 넓이는 5㏊ 이상, 높이는 30m에 이른다.
카호키아 마운드 역사 유적은 미시시피 지역에 콜럼버스 이전부터 문명이 존재했음을 가장 종합적으로 증명한다. 이 유적지는 도시가 성립하기 전의 건축 구조물 중에서도 초기의 특별한 사례이다. 또 이 유적지는 문자로 기록되지 않았으나 당시에 사회조직 형태가 어떠했는지 연구 가능하게 해 주는 사례이다. 카호키아 유적은 프랑스 인들이 이 지역에 왔을 당시 이 지역에 살고 있던 일리니웩(Illiniwek) 인디언의 한 부족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카호키아 유적은 900~1600년경까지 미시시피 지역에 존재한 콜럼버스 이전 문명을 연구하는 데 참고서 역할을 했다. 평원과 고원으로 이루어진 이 넓은 지역에서는 선사시대 막바지에 최초로 인구가 정착하고 증가했으며, 농업이 발전하면서 도시 집중적인 사회 체제가 성립했다. 인류학자들이 추산한 당시 이 지역의 정주(定住) 인구는 약 10,000명이고, 잇따른 발굴 작업을 통해 그들의 사회・직업적 조직, 생활 방식, 장례 의식 등이 차츰 밝혀졌다. 1960년대 카호키아 선사 유적지를 발굴하던 중 매우 매력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발굴 지도를 연구하던 워런 위트리(Warren Wittry) 박사는 수많은 거대한 계란형 구멍들이 원호 형태로 배열되어 있음에 주목했다. 그리고 구멍들에 세워진 기둥들이 연중 각기 다른 일출점에 맞춰져 있었는데 그를 통해 달력의 기능이 있을 것으로 추론하였다. 그리고 이를 ‘우드헨지(Woodhenge)’라 명명했다. 기둥을 박은 구덩이에 남아 있는 나뭇조각들을 보면 신성한 나무인 연필향나무가 기둥을 제작하는 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 가장 장엄한 일출은 태양이 정동쪽에서 떠오르는 춘・추분점에 일어난다. 이 일출을 표시하는 기둥은 지도자의 거주지인 몽크스 마운드를 정면으로 마주 보며 나란히 늘어서 있어, 마치 몽크스 마운드가 태양을 낳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 유산의 경계는 유럽 원사(原史)시대 오피둠(oppidum; 고대 요새 도시 거주지)의 성곽에 비견할 만한 흙 제방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성벽 내부는 거주 구역, 전문 활동 구역, 공공 의례 구역 등으로 합리적인 공간 구분이 이루어졌다. 거주 구역에 작은 정원들이 딸려 있긴 했지만, 경작지는 작은 외곽 마을들이 있는 성벽 외곽에 있었다. 카호키아의 주요 건축 자재는 흙과 나무였으며, 마운드가 가장 주된 건축 양식으로서 요새와 고분 역할을 담당했다. 가옥들은 기둥이나 나무 울타리로 방호를 했다. 가장 큰 마운드인 몽크스 마운드를 비롯해 12세기에 형성된 중심 지역은 정교한 건축 공법을 이용했으며 보루를 갖춘 성곽 형태의 울타리로 에워싸여 있었다. 발굴 결과 도심에 권력이 집중된, 위계질서가 뚜렷한 사회 구조가 이곳에 존재했음이 밝혀졌다. 1000년경에 지어진 세 번째 원형 지역[circle]은 1985년에 그 자리에 재건되었다. 기둥 구멍들에서 볼 수 있는 대자석 안료(代赭石顔料)는 기둥들에 색이 칠해져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원뿔형 마운드인 라운드 톱 마운드(Round Top Mound) 옆에는 편평한 직사각형 마운드인 ‘폭스 마운드(Fox Mound’ 60호 마운드’)가 잇닿아 있다. 지형적으로 단일한 외곽선에 둘러싸인 이 마운드들은 평평한 단(段)으로 이어져 있다. 단순히 각 마운드에서 발생한 애추(崖錐)가 합쳐지는 과정에서 그렇게 이어졌을 가능성도 있지만, 쌍을 이룬 다른 마운드들의 관계를 볼 때, 이들 역시 아마 한 단위로 기능했을 것이다. 이 두 마운드는 미국 남동부 민족의 역사에서 이 시기에 평평한 납골용 마운드와 원뿔형 매장용 마운드가 서로 연결되어 있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