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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0년 전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어/ 정지창

문근영 2017. 11. 14.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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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어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대통령선거의 열기는 우리의 눈과 귀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신문, 인터넷 같은 매체들이 온통 BBK니 단일화니 정책연합이니 하고 잠시도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자꾸자꾸 새로운 문제와 논란거리들을 내놓는 바람에 오히려 정신이 산란해질 지경이다.

장날에 시장바닥이 시끌벅적한 것이 당연하듯 선거일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지금 정치판과 언론이 이처럼 정신없이 혼란스러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소한 문제들을 쫓다보면 전체의 흐름과 사안의 경중을 파악하지 못하고 어느 단계에 가서는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누가 되든 그놈이 그놈일 텐데…’하는 자포자기에 빠지기 십상이다.

정치적 민주화는 이루었지만

특히 살길이 막막한 농민이나 빈민, 비정규직 등 이른바 소외계층이 이러한 심리상태에 근접해 있다. 거기다 이른바 양심적 지식인 가운데서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일종의 우울증이나 무력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개혁에 대한 기대가 실망과 배신감으로 돌아온 경험이 ‘또 속지는 말아야지’ 하는 일종의 자폐적 방어기제로 작용하는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7, 80년대의 지식인들은 군사독재가 모든 악의 근원이므로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지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풀려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90년대 들어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군사독재로부터는 벗어났으나 외환위기와 세계화의 태풍을 맞고 나서는 민주화보다는 안정적으로 먹고 사는 일이 우선이라는 강박에 갇히고 말았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란 야당측의 구호는 좌·우나 진보·보수를 떠나 어느 쪽으로든 변했으면 좋겠다는 대중의 심리를 절묘하게 포착하여 선거판의 기선을 제압한 듯하다. 이에 맞서 여당측에서 내놓은 ‘잃어버린 50년 되찾은 10년’이라는 구호는 아무래도 궁색한 수세적 변명처럼 들린다. 자유당 말기에 야당이 들고 나온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구호에 밀려 자유당이 내놓은 ‘갈아봤자 별수 없다’라는 구호가 그러했듯이.

솔직히 나는 이명박 후보가 집권하여 대운하 공사로 남한 땅을 온통 파 뒤집어 놓든가, 이회창 후보가 집권하여 남북관계를 냉전시대로 되돌리는 것을 원치는 않는다. 그렇지만 정동영 후보에게서는 새로운 변화의 내용을 읽을 수 없다. 문국현 후보의 인간중심의 새로운 경제체제라는 구호는 매력적이지만 노무현 정권에 대한 경험 때문에 선뜻 지지하게 되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의 노선은 옳지만 지지도가 제한적이다.

유권자가 좀 냉정하고 영악해질 필요 있어

유권자들은 나름의 선택 포인트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현 정권에 대한 감정에 따라 회고적 판단을 하는 듯하다. 그러나 대선은 앞으로 5년간의 지도자를 정하는 것이다. 공동체가 나아갈 바람직한 변화의 방향을 고려한 미래지향적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최소한 더 나빠지진 않아야 한다. 최상은 여의치 않더라도 최악은 피해야 한다.

그렇다면 좀 거리를 두고 삐딱한 시선으로 선거판을 바라보면 어떨까? 지난 10년간의 변화를 모두 10년 전으로 거꾸로 되돌려 놓는 변화가 과연 바람직한 개혁인가. 그리고 그렇게 되돌려 놓으면 일자리가 저절로 생기고 돈벌이가 쉬워지는 세상이 올 것인가. 지금보다 좋아진다면 모두에게 좋아질 것인가, 아니면 특정한 부류나 집단에게만 좋아질 것인가. 너무 달콤한 약속은 대개 사탕발림이고 사기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경제적 민주화의 관점에서, 아니 자신의 이익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그저 막연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언론이 검증을 포기하면 유권자가 좀 영악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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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정지창
· 영남대학교 독문과 교수
· 전 민예총대구지회장
· 저서: <서사극 마당극 민족극> 등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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