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세계문화유산(649)/ 에티오피아/ 파실 게비, 곤다르 지구

문근영 2017. 11. 11. 09:51

세계문화유산(649)/ 에티오피아

 

파실 게비, 곤다르 지구(Fasil Ghebbi, Gondar Region; 1979)

 

 

Fasilides' castle

 

Side entrance to Fasil Gemb

 

 

 

 

 

 

 

 

 

 

 

 

 

 

 

 

 

 

 

 

 

   암하라(Amhara) 주에 위치한 요새 도시 파실 게비16~17세기 에티오피아의 파실리다스(Fasilides) 황제와 그의 후계자들이 거주했던 곳이다. 900m에 달하는 벽으로 둘러싸인 이 도시에는 궁전, 교회, 수도원, 독특한 공공건물과 개인 건물이 있다. 이곳의 건물은 힌두 문화와 아랍 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예수회 선교사들이 곤다르(Gondar) 지방에 들여온 바로크 양식의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파실 게비 세계유산은 타나(Tana)의 북쪽 고원에 있는 근대 에티오피아 문명의 탁월한 증거이다. 곤다르 시대의 독특한 양식은 17세기 초 수도에 등장하였고, 그 뒤 오래 지속되며 에티오피아 건축에 영향을 주었다. 해발 2,300m가 넘는 두 산맥 옆에 있는 곤다르는 파실리다스 황제가 건설했다. 그는 선조들의 삶의 특징인 반복되는 이주를 싫어하여 1636년 이곳으로 수도를 옮겼다고 한다. 곤다르1864년까지 에티오피아 왕국의 수도였고, 이곳은 중세의 성과 교회도시 설계와 장식 기념물으로 유명하다. 아무도 파실리다스가 이곳에 수도를 만든 이유를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몇몇 전설에 따르면, 대천사가 에티오피아 수도는 문자 ‘G’로 시작되는 곳에 세워질 것이라 예언했다고 한다. 전설은 구자라(Guzara), 고르고라(Gorgora), 마지막으로 곤다르 같은 16~17세기의 도시를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신이 선택한 장소에 도시를 건설하였는데, 파실리다스가 사냥하느라 물소를 따라왔을 때 신이 곤다르를 지목했다고 전한다. 가장 큰 성은 파실리다스의 명령에 따라 1630년대 말과 1640년대 초에 건설하였다. 이 성은 나중에 요새로 둘러싸였으며, 오늘날에는 목초지가 있다. 성벽은 거대한 탑과 불쑥 드러난 총안(銃眼)의 흉벽을 갖추었는데, 중세 유럽성의 일부를 에티오피아로 옮겨 놓은 것처럼 보인다. 이 성 외에도 파실리다스는 수많은 건물의 건축을 주도했다고 한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은 둥근 지붕 때문에 달걀 성’[Enqulal Gemb; Egg Castle]이라고 부르는 성이다. 북서쪽의 카하(Qaha) 강에 있는 도시의 경계 넘으면 파실리다스와 관련 있는 또 하나의 훌륭한 건물인 수영장 궁전[bathing palace]이 있다. 2층짜리 건물에는 총안이 있는 흉벽이 있으며 한쪽에 직사각형 풀(pool)이 있다. 풀 안에는 근처의 강과 연결되는 운하를 통해 물을 공급했다. 수영장 궁전의 부속 건물은 활 모양의 교각 위에 서 있는데, 돌다리를 거쳐 갈 수 있는 방이 있다. 다리의 일부는 방어를 위해 들어 올릴 수 있다. 건축에 관심이 많았던 황제는 또한 교회 7개와 수많은 다리를 만들었다. 이야수(Iyasu) 대왕은 파실리다스의 손자로 매우 열정적이었다. 이야수의 성은 당대에 솔로몬 궁전보다 더 훌륭하다고 평가받았다. 내벽은 상아거울종려나무 그림으로 장식하고, 천장은 금박과 값비싼 석재로 마감하였다. 이야수가 남긴 영구불변의 최고 업적은 데브레 베르한 셀라시에의 교회’[Church of Debra Berhan Selassie]의 건축이다. 이 교회는 도시의 북서쪽에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종교적으로 계속 이용되었다. 데브라 베르한 셀라시에 교회의 외부를 보면 초가지붕에 직사각형 구조로 평이해 보인다. 그러나 내부 벽에는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게 채색된 종교 역사의 장면이 펼쳐져 있다. 북쪽 벽면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위에 삼위일체를 주제로 그려져 있으며, 남쪽 벽면에는 성모 마리아가 그려져 있고, 동쪽 벽에는 예수의 일생을 주제로 한 그림이 펼쳐져 있다. 서쪽 벽면에는 붉은 황금색 바탕 안에 성 조지가 백마를 타고 있는 장면을 포함하여 주요 성인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뛰어나고 인상적인 작업을 끝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하는 아내가 죽자 이야수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는 국가의 일을 더는 돌보지 않았다. 그러자 이야수의 아들 테클라 하이마노트(Tekla Haimanot)가 스스로 황제라 선포하고 아버지를 죽였다. 나중에 테클라 하이마노트도 암살되었다. 그의 후계자도 강제로 물러났고, 후임 황제는 독살되었다. 잔혹한 행위는 바카파(Bakaffa) 황제가 즉위하면서 끝났다. 그는 2개의 훌륭한 성을 축조했는데, 하나는 자신을 위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황후 멘테왑(Mentewab)을 위한 것이었다. 역사가들은 바카파의 후계자인 이야수 2세를 완전한 권위로 통치한 곤다르의 마지막 황제라고 여긴다. 이야수 2세의 치세 동안에는 왕궁 단지 밖에는 새로운 건설 작업을 있었다. 황제는 도시의 중심의 북서쪽 언덕 위에 크웨스크왐 교회[Church of Kweskwam; 성모 마리아의 집 이후]도 건설하였다.

출처 : 불개 댕견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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