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반짝반짝 / 정은기

문근영 2017. 10. 31. 12:53

반짝반짝

 

   정은기

 

 

 

지나가는 사람들은

앞모습이거나 뒷모습뿐이다

 

산책 나온 사람들이 철봉에 개를 묶어 놓았다

철봉은 개를 들어올리고

개는 철봉을 당긴다

 

주인은 철봉에 매달려 간신히 턱을 걸고 있다

철봉의 강도를 신뢰하고

개의 목줄을 사랑하며

얇은 손목을 후회하고 있었다

 

팽팽하게 달려 나가는 개

바깥에서 바깥으로만 달리는 개

 

계단은 직각으로 주름을 접고

사람이 지날 때만 불이 들어온다

 

반짝반짝을

있다없다있다없다로

옮겨 적었다

 

있다 없다 있다 없는 주인을 보고

있다 없다 있다 없는 개가 짖는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에 들어서면

전등은 있다없다있다없다

 

불 들어온 얼굴이

불 꺼진 얼굴을 보고 있었다

 

 

                       —《현대시》201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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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기 / 1979년 충북 괴산 출생. 200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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