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일곱 명의 엄마 / 이해원
일곱 명의 엄마
이해원
아빠가 엄마 손을 잘랐다 흙에 묻어 놓고 맨날맨날 들여다봤다 엄마는 한 손으로 빨래하고 밥도 했다 엄마의 남은 손 하나를 또 잘라서 흙에 묻었다 손이 없는 엄마는 다른 데서 손이 나왔다 흙에 묻어 놓은 엄마의 손은 점점 자라서 몸통이 되고 거기서 손이 나와 엄마가 되었다 또 손을 잘라서 묻으면 엄마가 되고 되고 되고 그래서 엄마는 수없이 많아지고 아빠는 선인장 화분을 아주 많이 갖게 되고
엄마가 병원 가고 없으면 나는 집이 무서웠다 동생한테 엄마가 네 명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집에 유치원에 이마트에 그리고 피자집에도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동생은 엄마가 세 명 있으면 좋다고 했다 우리 집에 어린이집에 아이스크림 가게에도 엄마가 있으면 좋다고 했다 동생과 나는 내 엄마 동생 엄마가 따로따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빠는 잠만 자는 엄마를 산에 묻었다 산은 아주아주 큰 화분이라고 아빠가 그랬다 아저씨들이 엄마를 흙으로 덮으면서 마구 떠들었다 저러다가 엄마가 깨면 혼날 거라고 생각했다 누가 엄마를 꺼내가지 못하게 아저씨들이 꼭꼭 흙을 밟을 때 나는 기도했다 엄마 싹이 일곱 개 나오게 해 달라고, 아주 큰 엄마 화분을 다 만들고 아빠가 물을 뿌릴 때 나는 속으로 웃었다
—시집『일곱 명의 엄마』(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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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원 / 1948년 경북 봉화 출생. 본명 이숙자. 1999년 《수필춘추》신인상 당선. 2012년 〈세계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일곱 명의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