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나에게도 해바라기가 / 오정국
문근영
2017. 10. 31. 12:49
나에게도 해바라기가
오정국
국도 끝을 딛고 서서
벌판으로도 가지 않고 강으로도 가지 않는
당최 이해할 수 없는 꼿꼿한 외줄기
저기에 뭘 견줘볼 것도 없고
자존이니 고독이니, 가당찮은 혁명을 부르짖을 일도 없는데
해바라기가
나에게도 해바라기가
무릎 꿇고 뉘우칠 통곡처럼 서 있다
삼복 염천의 한복판을 건너듯이
생은 언제나 못말랏던 것
내가 저를 붙잡아 흔들며
이번 생의 패착을 되짚어볼 일도 없을 텐데
다그칠 일도 없겠는데, 해바라기가
허리 굽혀 받들어 올릴
죄罪도 없이
서 있다
잠을 깰 때마다 여름이었고
삽을 들고 논둑을 다잡아놓듯이, 진흙을 처바르고
얼굴을 들 때마다
해바라기가
뜻밖의 제 자리를 찾아낸 듯이
풀이 풀을 뒤덮고
해바라기가
벌판을 건너가는 소낙비처럼
컨테이너를 타고 넘는 칡덩굴처럼
—《시로 여는 세상》2016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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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국 / 1956년 경북 영양 출생. 1988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 시집 『저녁이면 블랙홀 속으로』『모래 무덤』『내가 밀어낸 물결』『멀리서 오는 것들』『파묻힌 얼굴』. 문학 평론집『시의 탄생, 설화의 재생』『비극적 서사의 서정적 풍경』. 현재 한서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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