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킁킁거리는 지상 / 김정수
문근영
2017. 10. 31. 12:45
킁킁거리는 지상
김정수
늙어가는 개의 등에 날개를 달아줬지
지상의 것에만 킁킁거리던 개가 멀건 구름에 코를 박고 전생을 더듬어
초승달 같은 꼬리조차 뜯어먹을 수 없는 기억
먼저 태어난 개띠의 고향이라 하는 말은 아니지만
세상에 영원한 유약함은 없어 물리고
물리는 게 탄생의 법칙, 달에 생겼다 사라진 검은 가족사야
개가 소리 없이 삭(朔)을 건너
형제의 난이 블랙홀에만 있는 건 아니야
하늘의 병동은 파랑이거나 검정
아무리 피가 붉어도 달은 쌍둥이 동생이 없어
달의 그늘에는 손목을 붙잡아 맬 침대도 헝겊도 없어
손을 감싼 달의 장갑은 무표정해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는 것들은 쉽게 늙어가지
휴일의 면회는 무료할 뿐이야
후생의 가족은 말이야,
날개 달기 전과 후가 다른 타로점 같은 거야
상처는 건드릴수록 덧나는 건 알고 있지
지상으로 추락한 돌은 다시 허공으로 돌아갈 수 없어
날개를 달았다고 뭐 다를 것도 없긴 해
하늘에 머물러도 뒷다리 들고 오줌 누는 건 여전하더군
소식 없이 잘 사는 것도 중병이야 늙은 개의
죽음 뒤가 걱정이야 날개에 불을 달아 하늘로 올려 보내면
기억은 점점 사라져 전생으로 흘러가지
—《시산맥》2016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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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 / 1963년 경기도 안성 출생. 1990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시집『서랍 속의 사막』『하늘로 가는 혀』.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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