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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산의 탄생 / 최영철

문근영 2017. 10. 31. 12:39

우산의 탄생

 

   최영철

 

 

 

비올 때 슬그머니 탈출하려고 낙하산을 만들었으나

더 이상 낙하할 곳이 없는 바람에 우산이 되고 말았다지

비 오나 눈 오나 햇살 퍼붓는 날에도 그걸 접지 못하는 건

그래도 언젠간 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라지

언젠간 다시 떠오를 희망 때문이라지

활짝 펼친 저 행렬을 봐라

비 오나 바람 부나 햇살 따가우나 저리 당당한 건

간혹 그게 남사스러울 때 얼굴 숨기기 좋아서라지

그걸 받치고 있으면 얼굴 환해져

금방 낙하산 타고 내려온 천상 손님으로 보여서라지

해 쨍쨍한 날에도 그걸 접지 못하는 건

밤새도록 다짐한 굳센 언약 보일까 걱정 되어서라지

낙하산 태워 보낸 그 사람 볼 낯이 없어서라지

바람 심한 날 그래도 간혹 그 사람 그걸 까뒤집고

알밤을 먹이고 도망가기도 한다고 했지

그래도 그걸 접지 못하는 건 언젠간 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이라지 그 많던 희망 다 들통 나고

이제 딱 하나 남은 그 희망 때문이라지

 

 

                      —《시와 시학》2016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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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 1956년 경남 창녕 출생.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찔러본다』『호루라기』『그림자 호수』『일광욕하는 가구』등과 산문집『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변방의 즐거움』, 성장소설『어중씨 이야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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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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