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침대감옥 / 김윤하
문근영
2017. 10. 31. 12:35
침대감옥
김윤하
면도칼이 필요해, 그녀가 내 귀에 속삭인다
곁눈질로 간병인 눈치를 살피고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붙여 왼 손목에 그으며 눈을 맞춘다
오랜 생각이 두 눈동자 속에서 글썽인다
그녀의 손목 핏줄에 날이 서고
내 손목이 서늘해진다
엘리베이터로 올라가는 섬
희망요양병원이 주는 희망은 무엇일까
나는 이마에 흘러내린 그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준다
새하얀 비단실 같은 머리카락 사이로 검은 머리카락이 반짝거린다
슬픈 시간도 이렇게 빛이 나는 것이다
되새김질하면 할수록 느려지는 시간, 8인실에 가득하다
창밖은 봄빛에 들뜬 구름이 지나가는데
물이 제일 맛있어,
중얼거리며 뜨거운 물을 빨대로 홀짝홀짝 마신다
수분을 돌려주세요,
광고 카피처럼
물로 사는 그녀 살결이 여배우 광채 피부를 닮아 있다
그녀는 손잡고 인사하는 내게 또 속삭인다
면도칼 싫으면 수면제 좀 모아 와.
—《문학과 창작》 2017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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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하 / 서울 출생. 2000년《문학과 의식》등단. 시집『나의 붉은 몽골여우』『북두칠성 플래시몹』.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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