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딸기 / 고영민

문근영 2017. 10. 31. 12:34

딸기

 

   고영민

 

 

 

한 겨울 어둠 속

비닐하우스 한 동이 하얗게

빛나고 있다

세인트버나드와 도사견의 혼혈인

투견 한 마리가

훈련용 러닝머신을 세 시간째

달리고 있다

주인은 천천히 컵라면의 남은 국물을

들이킨다

개는 달린다

옆을 막아놓은 러닝머신은

멈추기 전까지

무조건 달리도록 되어 있다

달리는 개의 귀와 얼굴과 다리에

찢긴 상처자국이 있다

옆 동의 비닐하우스에 딸기가 익어가고 있다

주인은 시계를 본다

싸워야 한다

물어야 한다

물면 놓지 말아야 한다

딸기가 익어가듯

개가 달린다

 

 

                        —《시와 사람》2017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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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민 / 1968년 충남 서산 출생. 2002년 《문학사상》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악어』『공손한 손』『사슴공원에서』『구구』.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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