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맨드라미 / 박소유

문근영 2017. 10. 31. 12:33

맨드라미

 

   박소유

 

 

 

아이를 또 죽였습니다

 

밥 안 먹는다고, 말 안 듣는다고, 거짓말한다고, 떼쓴다고,

하나, 둘, 사라지는 아이들

 

옷도 걸치지 않은

맨살의 꽃잎이 솟아오릅니다

피가 통한다고

함부로 꽃밭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밥 잘 먹어도, 말 잘 들어도, 거짓말 안 해도, 떼 안 써도

그 밖의 이유로

아이들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 손은 정말 따뜻한데

그 손으로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나 하는지,

기억은 거짓말을 잘하니

차라리 눈을 감아 버릴까요

 

우리는 손에 피를 묻히고 꽃이라 부르지 않습니까

 

 

 

                      —《시와 표현》2017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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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유 / 1988년 〈부산일보〉신춘문예,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어두워서 좋은 지금』.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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