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그림자를 함께 사용했다 / 송미선
문근영
2017. 10. 31. 12:31
그림자를 함께 사용했다
송미선
허기가 흰 건반과 검은 건반 사이에 깃든 뒤로
그곳을 지나가기 전에 발끝을 모은다
마주보며 걸어오는 당신의 그림자가 교차로 중간쯤에서
같은 건반을 디디며
잠시 겹쳐지는 것처럼
순간 발걸음 멈칫하며 두께를 부풀리는 횡격막
반쯤 돌아보며
깜박이는 신호등 불빛보다 빠르게
다가오는 그림자를 온몸으로 맞설 태세로
안부를 물어보려고 입술을 오므리는데
재촉하며 달아나는 발걸음
예열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비등점은 올라가는데
낯가림이 심했던 손가락은 건반을 건너뛰었다
조율되지 않는 입천장에서 물집이 무더기로 부풀어 오르고
거품 이는 소리가 들렸다
핏줄 불거지는 그림자를 위해 불이란 불은 모두 끄고
숨소리를 조율하며
그날부터 우리는 그림자를 함께 사용했다
—《시인동네》2017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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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선 / 경남 김해 출생. 동아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1년 《시와사상》으로 등단. 시집『다정하지 않은 하루』.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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