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다정한 전설 / 안차애
문근영
2017. 10. 31. 12:30
다정한 전설
안차애
야*, 라고 함부로 불리는 신화
야, 라고 어깨를 치거나 허그를 해도 될 듯한 다정한 전설
브래드피트와 장동건을, 첫사랑과 이상형을 섞어 닮은 체 게바라
쿠바의 시가 냄새가 나는 게바라의 미소
담배는 혁명의 고독한 친구라던,
그가 피우던 담배는 어떻게 그의 입술을 잊었을까
곱슬머리를 쓸어 넘기던 베레모는 어떻게 땀 밴 머릿결을 잊었을까
야전 텐트에서도 놓지 못했던 만년필은
어떻게 그의 간곡한 필기체를,
끈이 닳아버린 군화는 젖은 발의 굴곡을 어떻게 잊었을까
볼리비아 밀림에서 두 발의 총성
그 총성이 운명의 위도와 경도를 통과했을 때,
국경을 넘나들던 그의 과업이
슬며시 구름 소파 쪽으로 그의 손을 이끌었을까
이제 그만 아디오스, 그가 먼저
오래 앓던 천식처럼 지친 혁명을 가만히 잠재운 것일까
허리띠의 회중시계는 시간을 버리고 영원이 되었다
영원을 버리고
섹시하거나 훈훈한 화보가 되었다
재즈 바의 입간판과 티셔츠의 모델이 되었다
공평하게 가난한 쿠바인의 빵과 럼주가 되었다
야, 라고 툭 치면서
야, 라고 어깨를 으쓱이면서
————
* 야 : 체 게바라의 이름 '체'가 '야'라는 친구에게 하는 호칭격 대명사라고 함.
—《문학청춘》2017년 봄호
-------------
안차애 / 1960년 부산 출생. 2002년〈부산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 『불꽃나무 한 그루』『치명적 그늘』등.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