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흥미로운 일 / 이수명

문근영 2017. 10. 31. 12:30

흥미로운 일

 

   이수명

 

 

 

어떤 공기와 마주쳤을 때

냄새를 맡기도 전에

그 공기를 마시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공기가 폐에 달라붙는다.

폐에 손을 넣어 본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며

밤과 새벽 사이 아무 데나 걸터앉는다.

얼마나 많은 곳에 걸터앉았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새벽이 부서지고 나면

커피를 마시러 간다.

밀기만 하면 되는 짤랑 소리가 나는 문

한눈에 들어오는 실내

어느 빈자리

간밤의 시체를 놓아둘 만한 곳이다.

그러나 매번 다른 자리 벌써 몰려와 있는

마주치는 얼굴들 사이에 끼는 게 낫겠다.

 

새 출발을 하려는 듯 서로 빼닮은 사람들

둥근 머리 위로 한꺼번에

의자들이 날아다닌다.

우리는 무덤에서 나온 사람들이다.

모두 죽음에서 덜 깬 웃음을 터뜨린다.

별일 없냐고

어둠의 잠자리를 함께하는 것 외엔 더 이상 아무 일 없다면서

이른 시간에 모두들 비슷한 손잡이가 달린

잔을 들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히터에서 따뜻한 공기가 나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공기가 따뜻할 때 여기를 빠져나가야 할 것 같다.

몸이 다 녹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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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글을 찢다 말고

커피를 마시다 말고

다른 곳으로 가야 할 것 같다.

앞으로 페이지를 뒤지면 다음 페이지를 참고하라는 말만 나온다.

 

 

 

                        —《시인동네》2017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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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명 / 1965년 서울 출생. 1994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 『마치』 등. 시론집 『횡단』.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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