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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숨은 고양이 찾기 / 길상호

문근영 2017. 10. 31. 12:29

숨은 고양이 찾기

 

   길상호

 

 

 

책을 펼쳐놓으면 고양이들이

줄무늬를 맞추며 문장마다 들어와 앉았다

 

눈이 내린 아침 담장 위에는

흰 고양이가 소복이 쌓여 있었다

 

빈 택배박스가 다시 무거워졌다

열어보니 삼색 고양이가 보자기처럼 묶여 있었다

 

검은 고양이를 편애한 밤은

제 눈동자 속에 아이들을 숨겨두었다

 

참을성 없는 울음만 튀어나오지 않으면

영영 들킬 일은 없어 보였다

 

꼭꼭 숨은 고양이를 찾다 찾다 못 찾으면

철컥, 아껴둔 참치 캔 하나를 땄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한꺼번에 달려들어

니야옹니야옹 보채는 고양이들

 

캔 하나를 순식간에 비우고 나서는

나의 비린 눈까지 깨끗하게 핥아주었다

 

 

                   —《리토피아》2017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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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호 / 1973년 충남 논산 출생. 2001년 〈한국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눈의 심장을 받았네』『우리의 죄는 야옹』외, 사진에세이『한 사람을 건너왔다』.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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