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종점 부근 / 남진우
문근영
2017. 10. 31. 12:22
종점 부근
남진우
붉은 비가 내렸다
어스름 드리워진 거리를
야간검침원이 유리창을 깨트리며 지나간다
화재경보기 하나 울리지 않고
조용히 해저의 마을이 저문다
열리지 않는 문을 앞에 두고 끝없이 소곤대던 아이들은
마지막 술래를 남겨놓고 집으로 돌아갔다
붉은 비, 혀를 내밀어 핥아보면
깔깔하게 와 닿는 소금의 맛
물살 찢어낸 자리마다 멍처럼 푸른 어둠이 찾아든다
먼 사막에서 양털을 깎던 여인은 하늘의 별자리를 보며
붉은 비가 내리는 어느 혹성을 그리워할 것이라고
기일게 초인종을 울리며 마지막 택배가 배달되고
묵중한 철문이 닫힌다
해저의 마을엔 일렁이는 가시덤불과 산호초 사이
그물을 드리우려 내려오는 낯선 별들이 보인다
—《현대시》2017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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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우 / 1960년 전주 출생. 1981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시, 1983년 〈중앙일보〉신춘문예에 평론으로 등단. 시집 『깊은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죽은 자를 위한 기도』『타오르는 책』『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사랑의 어두운 저편』등. 현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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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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