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편육 / 고영민

문근영 2017. 9. 7. 01:20

편육

 

   고영민

 

 

 

눌린 고기 속에

여자가 박혀 있다

우는 아이가 박혀 있다

하이힐과 잘린 채 더듬는 손

큰 엉덩이가 박혀 있다

뺨을 갈기는 손과 빼도 박도 못하는 얼굴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발과

임산부와 노약자가 박혀 있다

아무리 떨어지려 해도 떨어지지 않는 몸

안내방송, 짜증스런 목소리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와 커터칼

구겨진 넥타이가 박혀 있다

성화봉송 주자처럼 높이

꽃다발을 들고 있는 중년남자가 박혀 있다

젤리처럼 쫀득한 사각의 고기 속

다급한 목소리

속이 훤히 보이는 가방 하나

발기된 성기, 떠밀려 끝내 내리지 못한

납작한 어깨가

박혀 있다

 

 

                       —《문학사상》2017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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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민 / 1968년 충남 서산 출생. 2002년 《문학사상》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악어』『공손한 손』『사슴공원에서』『구구』.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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