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폭설카페 / 전영관

문근영 2017. 9. 7. 01:19

폭설카페

 

   전영관

 

 

 

북방으로 떠나기 맞춤인 날이다

눈송이를 헤아리는 당신에게

탁자에 흥건한 커피 향을 준비하라고 눈짓한다

 

솔개처럼 날아갈 생각을 했다

활공이란 허공을 미끄러지는 새들의 기법

눈 내리는 날의 생각들은 위험해도 푹신하다

 

나의 북방은 안온할 것

발정發情에 겨운 수컷 순록들이

뿔 부딪는 소리에 하르르

자작나무 가지의 설화雪花가 쏟아지는 곳

우리의 북방은 분주할 것

어둠 속으로 살금거리는 들짐승들 사이

어미 여우가 꼬리로 가만가만

젖먹이들 칭얼거림을 덮어 재우는 곳

 

당신은 아내여서 북방의 끼니를 예감하는지

눈빛 자욱하다

눈 구경하느라 창가에 서 있다가 나는

순록에게 배운 듯 우쭐거리며 자리로 돌아온다

토끼나 쫓다가 도끼마저 잃어버린 나무꾼처럼

자발없이 웃어본다

 

 

                         —《포지션》2017년 여름호

--------------

전영관 / 충남 청양 출생. 2011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바람의 전입신고』『부르면 제일 먼저 돌아보는』, 산문집 『그대가 생각날 때마다 길을 잃는다』『슬퍼할 권리』『이별과 이별하기』가 있다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