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숨 4 / 전순영

문근영 2017. 9. 7. 01:15

숨 4 / 전순영

 

 

  문경새재 너머 백화산 중턱에 혼자 사는 집

  뻐꾸기 울음이 들어와 살고 개울물 소리 풀벌레 소리 들어와 산다

  밤이 오면 하늘의 별들이 가야금 산조로 길게 내려오는 집

 

  오디 진보라빛이 나를 데리고 관음전 그늘로 간다

  일백여덟 계단을 내려놓고 서 있는 뽕나무는 까맣게 태운 시간들을

  가지마다 걸어놓고 파란 이끼가 터를 잡고 사는 집

  그 집에 들어와 앉았다 아니 그 집이 내 안에 들어와 앉았다

 

  지붕을 이고 서 있는 흙벽엔 듬성듬성 금이 가고

  마당에는 길을 가다 지친 풀잎들이 들어와 숨을 헹구는 집

  캄캄한 내 갈비뼈 밑에 웅크리고 있는 보현정사 문을 열어 두기로  했다

  해진 풀잎끼리 기대어 가슴을 깁는 피룩의 조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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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학 시인선 012 『숨』 . 2015년 5월

전순영 :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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