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동그라미만 믿었다 / 김인숙
문근영
2017. 9. 7. 01:14
동그라미만 믿었다
김인숙
카메라가 앵글을 잡자 조명이 들어왔다 조명 밖의 그가 엄지와 검지 끝을 붙여 동그라미를 만들고 사뿐, 위로 치켜들었다 찰나에 단검을 집어든 나의 오른손이 냅다 달렸다 미끄러지는 빛의 동그라미를 따라가 중심에 깊숙이 밀어 넣었다 깜깜한 가운데 따뜻한 것이 흘러내려 어둠을 흥건히 적셨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을 보며 나는 동그라미만 믿었다 곧 막이 내렸다 젖은 어둠이 더 깊은 어둠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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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내가 붕어빵이 되고 싶은 이유』. 시인동네 시인선 056. 2016년.
김인숙 : 『월간문학』으로 등단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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