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콩나물에 대한 단상 / 유안나
문근영
2017. 9. 7. 01:13
콩나물에 대한 단상
유안나
비빔밥에서 콩나물을 골라냈다.
콩나물 없는 비빔밥은 밥알이 실존주의다. 콩나물이 싫다. 비빔밥에 고추장이 들어가고, 도라지가 들어가고, 고소한 참기름이 들어가면 콩나물은 긴 꼬리를 슬그머니 감추는 스토아학파처럼 순종적이어서 싫다.
콩나물은 몰개성이어서 싫고, 값이 싸서 싫고, 몰지각한 당신만 보면 파랗게 질려서 싫고, 물만 주면 줏대 없이 키만 껑충 커져서 싫고, 없어도 있고 있어도 없어서 싫다. 무엇보다 검정 비닐봉지 속에 담긴 싸구려 생이 싫다.
어머니는 귀먹고 눈멀고 입 닫고 삼 년씩 살았다 했지만, 그건 씨알도 안 먹히는 거짓부렁. 시루 속에 콩나물 대가리는 다 안다. 콩나물 대가리는 시루 속에서 어머니와 함께 했으므로.
싫어서 실해져가는 콩나물이 오늘도 당신의 방, 윗목에 웅크리고 앉아,
구불구불 자라고 있다.
------------------------------------------------
시집 『당신의 루우움』. 시인동네 시인선 055. 2016년.
유안나 : 2012년 『애지』로 등단.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