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권태의 지형도 / 고경숙

문근영 2017. 9. 7. 01:11

권태의 지형도

 

고경숙

 

 

  평면상에선

  본질적으로 사랑이란

  과장된 감정이다

  그런 날은

  빛도 곡선이다

 

  서 있는 사람 둘은

  한때 지형지물로 서로가

  목표인 적도 있었다

 

  이 말을 하고 있는 사이,

 

  거울에 반사된 시선이

  그림자 뒤에 숨어 지켜본다

 

  방위를 염두에 두지 않은

  소통망의 설정으로

  지리조사에 무능했던 두 사람

  긍정의 기호를 따라가다

  문득

  초점이 다른 곳을 향할 때

  목표는 장애물이 돼버리고

  각자 의중대로 읽은 지형도는

  한낱 낙서 그림이 되는 날,

 

  등고선 속에는

  권태의 생김새에 따라

  오기 또는 누락으로 위치가 잘못된 곳

  새롭게 측량하는 날들이 가파른 절벽을 오른다

 

  만약,

  함축된 오늘의 등고선이

  심하게 일그러졌다면

  멀더라도 우회로를 찾아야 한다

 

  1:50000으로 축척된

  그럭저럭 흘러가는 보통의 하루가

  정작 둘 사이엔

  몇 개의 강을 흘러보내고 있다는 뜻이니까

 

-----------------------------------------------------2013년 『시와 미학』 가을호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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