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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지나가 버리는 것에 대한 메모 / 박형준

문근영 2017. 9. 7. 01:03

지나가 버리는 것에 대한 메모

 

박형준

 

 

  그 계절에는 발바닥에 별들이 떴다

  발그레한 아이의 피부 같은,

  막 뜨오른 별들로 가득한 벌판에서

  나는 말발굽을 주웠다

  밤마다 달빛에 비춰보며 꿈을 꾸었다

  벌판을 지나 하늘에 화살을 박는

  말 울음소리를 

  벌판의 꽃들이 짓이겨진

  하늘로 달려 나간 푸른 바람을

  말발굽의 꽃물 범벅을

 

  내 잠 속으로 향내 나는 청마가 달려오며

  성운 가득 밴 냄새로 별자리를 엮어갔다

  빛나는 말발굽에

  쩡쩡한 겨울 하늘도

  파편으로 흩어졌다

  우주가 내 발바닥으로 자욱하게 몰려드는

  푸른 연기로

 

  그러나 나는 이미 알았다

  꽃들이 어스름 속에서

  추억처럼 진해진다는 것을

  짓이겨진 꽃물이 사실은

  어스름이라는 것을

  말발굽이 놓여 있는

  빛의 길목으로

  지난 시절의 꿈들이 수줍은 듯

  그렇게 지나가버린다는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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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사회』 2012년 겨울호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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