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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의 펜화로 본 한국의 문화재 1/ 원구단 황궁우
서울 시청 앞 잔디 광장에서 조선호텔 쪽을 바라보면 빌딩 사이 작은 공원위로 팔각 정자처럼 생긴 건물이 보입니다. 고종황제가 하늘에 제를 올리던 원구단(圓丘壇)의 황궁우(皇穹宇)입니다. 조선호텔, 프레지던트호텔, 롯데호텔과 빌딩에 둘러싸여 숨도 못 쉴 것처럼 답답하였으나 서울시가 시청 앞 광장 쪽의 빌딩 하나를 사들여 헐어내고 그 자리에 작은 공원을 내서 숨통을 터놓았습니다.
우리나라에는 하늘에 제를 지내던 장소가 여러 곳에 있습니다. 풍수 전문가들의 말로는 모두 지기가 강한 생기처(生氣處)랍니다. 그중 하나인 강화 마니산 참성단을 지기탐지기로 측정해본 결과 이름난 명당이 1분에 20~30회 정도 회전하는데 반해 분당 65회전을 할 만큼 기가 강한 곳이랍니다. 기가 강한 만큼 기도의 효과도 크답니다. 원구단 터도 기가 엄청 센 곳으로 고종황제가 하늘에 제를 올리던 원구단과 황궁우, 석고단(石鼓壇)이 있었으나 일제가 원구단을 헐고 호텔을 지어서 조선의 지기를 막아 버렸습니다. 남아있는 것은 황궁우와 석고단 뿐입니다.
황궁우의 정문은 돌과 벽돌로 지은 특이한 문으로 조선호텔에 바짝 붙어있어 문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습니다. 문으로 오르는 계단 중앙의 답도에는 용을 새겼습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의 답도는 봉황문양이나 황궁우는 고종이 황제로 등극한 이후에 세운 것이라 중국과 동등하게 격을 높인 것입니다. 답도 좌우측에 배치한 해태는 우는것인지 웃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당대 최고의 솜씨를 발휘한 작품으로 표정이 풍부합니다. 이런 솜씨가 궁궐건축이 이어지지 못하면서 맥이 끊겨 버렸습니다. 지금은 궁궐 석조동물의 이름도 모르는 것이 있을 정도입니다.
고종 36년(1899)에 지은 황궁우는 석조기단을 8각으로 높이 쌓고 그 위에 세운 8각 3층 건물입니다. 밖에서 보면 3층으로 보이나 안에는 통층입니다. 내부에 3층 지붕까지 지탱하는 팔각기둥 8개를 둥글게 돌려 세웠습니다. 1층 바깥에는 모서리마다 3개의 팔각기둥을 세웠는데 기둥 윗부분과 창방의 아래에 파련각(波蓮刻)한 장식을 돌려 붙여 화려합니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사각 전돌을 깐 바닥위에 천신과 지신을 모신 작은 철제 가구 2개가 보입니다. 짙은 청색 보를 덮은 것이 천신이고 황색 보를 덮은 것이 지신이랍니다. 보자기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하여 서울 중구청 문화재과에 물어보니 상징물일 뿐 아무것도 없답니다. 2층 지붕과 3층 지붕 사래 끝에 토수가 끼워져 있습니다. 사래가 비를 맞아 썩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입니다. 본래 모두 청동토수였으나 근래에 흙으로 만든 토수로 갈아 끼운 것이 보입니다.
지붕 추녀마루 잡상은 맨 앞에 삼장법사, 그다음이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순으로 늘어서서 잡귀를 막는 역할을 합니다.
돌 북 3개를 나란히 세운 석고단은 고종 즉위 40년(1902)을 기념하여 세운 것입니다. 몸통에 새긴 용무늬의 조각 솜씨가 뛰어난데 마모가 되지 않아서 갓 만든 작품처럼 산뜻해 보입니다. 나라 안에 단 하나 뿐인 돌 북으로 용 문양을 연구하는 분에게 꼭 찾아보라고 권하는 명작입니다.
하늘의 자손을 자처하는 우리민족은 환웅 때부터 영고탑을 세우고 하늘에 제를 지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황제만이 하늘에 제를 지낼 수 있다는 이유로 고려 말 우왕 11년(1385)에 폐지됩니다. 나라가 힘이 약해지면 제사도 마음대로 못하게 됩니다. 원구단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1894년 청일전쟁에서 패한 청이 마지못해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였기 때문입니다.
고종 34년(1897) 조선의 연호를 광무(光武)로 고치고 남별궁터에 원구단을 건립합니다. 국호를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정하고 그해 10월 12일에 고종이 원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합니다. 그러나 그날 참석하였던 외국 외교관들은 “이처럼 즐겁지 않은 황제즉위식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라고 기록을 남깁니다.
당일 아침 고종은 꿈에 선왕이 나타나 노한 얼굴로 ‘예로부터 내려온 유풍을 변혁해서는 안 되느니라’고 하였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마음이 내키지 않은 고종은 40명이 메는 화려한 대련을 타지 않고 4명이 메는 소련을 타겠다고 화를 내는 등 까탈을 부리며 출발을 지연시킵니다. 겨우 떠난 행렬은 도중에 내부대신으로 철종의 사위인 박영효가 낙마를 하는 불상사까지 생깁니다. 고종의 한숨이 늘었겠지요. 여하튼 고종은 천지제를 올리고 황제에 오릅니다. 왕후 민씨를 황후로 책봉하고 중화전으로 옮겨 잔치를 하며 왕세자를 황태자로 책봉합니다.
원구단은 사각형으로 쌓은 벽돌담 안에 다시 원형 벽돌담을 두르고 그 안에 화강석으로 3단의 단을 올렸습니다. 땅은 네모지고 하늘은 둥글다는 이치에 맞춘 것입니다. 각 단마다 여러 신을 모셨지요. 맨 위 석단에는 원추형 지붕을 세웁니다. 지붕은 황금색이었답니다.
조선을 강제 합병한 일제는 1913년 원구단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철도호텔을 지어서 조선의 맥을 누르려 합니다. 민족정기를 되살리기 위하여 호텔을 헐고 원구단을 복원하자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그보다도 황궁우 마당이 호텔의 정원처럼 보이는 현실이 더 안타깝지요
황궁우와 석고는 역사는 짧지만 건축 기법이 특이한 소중한 유물로 자주독립의 의지가 담긴 곳입니다. 보물쯤 되려니 하고 살펴보니 사적지 제 157호랍니다. 일제야 당연히 문화재 지정을 하기 싫었겠지만 우리 정부에서는 달리 대접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원구단을 보시고 난 후 고종황제가 말년을 보낸 경운궁(덕수궁)을 돌아보면서 구한말의 역사를 되짚어 보세요. 어린 자녀에게는 나라의 힘이 부족하면 어떻게 되는 지 가르쳐 주셔서 장래를 튼튼하게 만들어 주시고요.
그림.글.사진=김영택 펜화가(honginar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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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김영택 화백님께 신문에 연재되었던 칼럼을 지인들께 메일로 재 발송 할수있게
허락을 받고자 전화를 드렸다...
혼자서 독점으로 알기보다는 아는 지인들께 김영택 화백님의 좋은 그림을 감상하고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며 생각 하시면서 쓰시는 칼럼은 개인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다.
특히 짬짬히 읽는 화백님의 칼럼은 역사책 두권 분량의 알차고 유익한 정보이다...
잠시 짬을 내어 제가 드리는 글을 보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성의로 메일만 열고 닫으시는 분도 많이 있을것이다...
그러나 글을 읽고 안 읽고는 받으시는 상대방의 환경이나 여건에 따라서 달라질수있다.
받으시는 메일이 부담 스럽거나 거북하면 알려주시면 보내 드리지 않을 작정이다..
그러나 나는 항상 지인들께 사진이나 글을 꼭 보내 달라고 요청한다.
특히 한치관 선생님,외 여러 선배님께서 보내주시는 메일 너무 반갑고 유익한 정보가 담겨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컴퓨터를 열때마다 나에게 관심을 갖고 메일을 보내주심은
나에게는 행복이고 또한 감사함이다.
현대인은 각박하고 바쁘게 산다..
그 와중에 나에게 꼬박꼬박 메일을 주시는 그 정성에 어찌 반갑지 않을수가 있는가??...
편지도 읽고 써야 글 솜씨도 는다.
40여년을 일기를 쓰면서 일기를 쓰지 않으면 뭔가 빼먹은것 같이 허전하다.
컴퓨터도 마찬가지 이다 쓰지않으면 잃어버리고 퇴색된다.
이렇게 지인들에게 글을 보내드리고 답장 받으면서 하나 하나 늘어 가는것이다.
지인들께서 저의 사무실에 오시면 축~처지는 음악만 흘러나온다고 지적 해주신다.
슬픈 노래를 부르는 가수는 단명 한다고...
나는 메일을 보내면서 같이 드리는 음악은 대체로 조용한 음악이다...
나에게는 늘어지는 음악이기에 앞서 삶의 휴식 음악이며 명상의 음악이다.
21년전 결혼했을때 장모님께서 나에게 한 마디만 하셨다.
사주가 좋은데 눈에 살기가 돈다고 스님께서 말씀 하셨다고...
그러시면서 스님께서 하루에 꼭, 참을인(忍)자를 세번 마음에 새기면서 살으라고 하셨다.
장모님께 말씀을 듣고서 한자사전을 찾아보았다..
참을인(忍)...ㄱ,견딤.ㄴ,용서함.ㄷ,어려운것을 참고 힘씀...
참을 忍 에는 심장을 본떠서 마음心변이 있다..
세상사가 다 그렇지 않은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그렇기에 내마음의 화(火)를 중화 시키기 위하여 될수 있는데로 조용한 음악을 듣는다...
그렇지만 잔치집이나 흥겨운노래를 부를장소에는 트로트나 흥겨운 음악을 부른다...
얼마전에 젊은이의 장례식장에서 같다와서 또 한가지를 배워왔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상대방에게 말을 할때 축복의 말을 함으로써....
상대가 즐거운 행복의 반응을 보이는가 하면, 저주의 말을하여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들 ...
연세 드신분은 트로트 음악이나 뽕짝 음악이 귀에 익어 현대적인 음악은 듣기가 별로 이실것이다.
그러나 믿믿하니 편지만 보내드리는 것보다는 나름대로 배경음악을 들으면서 읽으면
좋을 것이라 생각된다.
청정남이라는 메일이 익숙지 않아 받으시는 분이 스팸 메일이라 착각 하실까봐서
제목에는 당분간 제 이름을 쓸 예정이다...
오늘 주소록에 새로 20명을 새로 등록하였다 .
등록한 새로운 지인들께도 평안과 행복의 가정이 되기를 기원 할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