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육체라는 의복은 할머니를 입어볼 수 있을까 / 고미숙
내 어린 날은 고장난 나침반을 부레로 띄워 달고 물풀 숲을 헤엄쳐 다녔다 철없는 시간의 지느러미를 달고 원을 그리며 부산했던 날들,
방향 없는 그 길은 시간에게나 곧은 길이었다
물결치는 삶의 곡선이 가라앉지 않아 더디게 흐르던 시간들, 길이란 길은 다 저수지 쪽으로 나 보였다 수묵으로 번지는 저녁을 흐린 눈으로 핥으며 영원한 잠으로 가는 약초를 캐러 다니곤 했다
왜 그땐 자라는 모든 생각의 싹들을 삭발시켜 골짜기 암자에 쳐박아 두고 싶었던가 향이나 피워주고 싶었던가
들판 쏘다니며 뛰놀다 냇물에 멱감고, 해찰하다 맞이한 해거름처럼 언제 어른이 되어버렸는지,
그렇게 꽃샘바람도 눈 깜짝할 새에 낙엽의 날개를 달아버리는 것을!
뒷걸음쳐 걷던 골목 돌담에 핀 매화나무 이끼에도 내일로 가는 화살표가 숨쉬고 있는 것을!
눈부시게 빛나는 아침 햇가락 맛나게 들고 낮은 구름이 몰고 오는 빗방울 흠씬 맞아도 보고 꽁꽁 언 가슴 문질러 현란한 꽃도 피워볼 것을!
회오리바람 속을 걸어나온 시간아
내 육체라는 의복은 할머니를 입어볼 수 있을까
- 우이시 2005. 12월호
고미숙 시인
전남 곡성 출생
광주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2005년 <불교문예>에 시가
<월간문학>에 동시가 당선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