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겁난다 / 유안진

문근영 2010. 1. 27. 09:54

겁난다 / 유안진





토막 난 낙지다리가 접시에 속필로 쓴다
숨가쁜 호소(呼訴)같다


장어가 진창에다 온몸으로 휘갈겨 쓴다
성난 구호(口號)같다


뒤쫓는 전갈에게 도마뱀꼬리가 얼른 흘려 쓴다
다급한 쪽지글같다


지렁이도 배밀이로 한자 한자씩 써 나간다
비장한 유서(遺書)같다


민달팽이도 목숨 걸고 조심조심 새겨 쓴다
공들이는 상소(上疏)같다


쓴다는 것은 저토록 뜨거운 육필(肉筆)이란 말이지
몸부림치며 혼신을 다 바치는 거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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