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몽/장석주
- 이문구를 기리며
청진동 골목 어귀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한 사내를 보았다
지구에서 멸종된 어떤 생물 종을 닮았다는 그 사내의
고단한 어깨에 상심한 별 몇 개가 떨어져 앉고
바람은 한사코 외투자락에 매달렸다
그 뒤로 풍편에 전해들은 낙향 소식,
몸 어딘가에 몹쓸 병이 슬었다는 소식,
세상이 저를 버리기 전에 먼저 세상을 버렸다는 소식,
중모리 자진모리로 넘어가는 게 세월이었던가
중부 내륙의 기후는 여전한데
양양 낙산사 동종이 화마에 녹고
숭례문도 불꽃 속에서 숭엄한 한 떨기 꽃처럼 졌다
저녁의 외양간에서 암소가 순한 눈으로 울고
남쪽 어딘가에서는 동백꽃이 뚝뚝 떨어진다 한다
다시 청진동 골목 어귀에 오니
낙향했다는 그 사내
제 뒤쪽에 그림자 드리우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짧은 낮 긴 꿈 덧없다고
천년 오동나무 거문고가 운다
벌써 춘궁의 시절이다, 해가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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